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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이야기/국내 이슈

[국내 이슈] RT하다 구속된 박정근씨의 최후 진술서












트위터에 북한과 김정일을 풍자한 트윗을 공유하고 북한 인터넷 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운영하는 트윗을 리트윗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재판을 받은 박정근 (@seouldecadence)씨에게 징역 2년이 구형되었습니다.


박씨의 행동은 장난으로 볼 수 없고 국가보안법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하여 징역 2년이 구형된 것입니다.


아래에는 박정근씨의 최후 진술서 전문입니다.


최후진술서

 

사건번호 2012고단324 박정근

 

 

존경하는 재판장님


우선 최후진술을 하기에 앞서 몇 개월간의 긴 공판기일동안 애써주신 모든 분들을 비롯하여 변호인단과 저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신 판사님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하여 이미 변호인단과 많은 이들이 항상 이야기를 많이 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제가 여기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과연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남북의 분단현실은 비극적인 일이며 이로 인한 피해에는 좌우가 없고 승패도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저 언젠가는 없어지거나 고쳐질 법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자택과 가게에 압수수색을 받은 지가 작년 9월 21일이니 이 사건도 벌써 1년이 훨씬 넘게 진행되었습니다. 조사가 끝나고 재판이 진행되고 날짜가 지나면 어느 정도 심경이 정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 사실 저는 아직도 혼란스럽습니다.

 


올해 3월 9일의 모두진술서에도 이미 이야기를 했지만 저는 반공교육을 받고 자라온 세대는 아닙니다. 아마 저보다 두 세살 정도 위의 사람들은 받았을지 모르겠으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이 만나 악수하는 모습을 초등학교 6학년 때 교실에서 보았고 금강산에 남한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정규교육을 받아오면서 “북한공산집단” 혹은 “괴뢰정부” 라는 표현을 선생님들이 하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그들은 북한이었고 굶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나쁜 지도자를 두고 있다는 분단국가였습니다.

 


나이가 먹고 나서야 북한이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아니라 반국가단체의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본격적인 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또 이 반국가단체라는 북한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하는 사람들이나 자료를 구하는 사람들의 집과 사무실이 수색 받고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제 혼란은 더 가중되었습니다. 아직도 이런 혼란은 정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들을 잘못 만났고 교과서를 제대로 못 읽고 정규교육을 잘 못 받은 건지 제가 봐왔던 TV채널과 신문과 들었던 라디오가 주파수가 달랐고 나온 신문사가 달랐고 방송국이 달랐던 건지. 과연 그렇다고 해도 그 책임을 저 개인이 져야하는 것인지. 그리고 이런 혼란은 저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법이라는 것은 이제 정말로 확실히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냥 윗쪽 나라였던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안 제가 무슨 목적과 능력으로 이 나라를 뒤집을 수 있을 것이며 부모 말도 제대로 들은 적이 손에 꼽히는 제가 과연 누군가의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도울 수 있는 인간인지에 대한 답은 확실치가 않습니다. 저는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재판을 진행하면서 제가 느낀 것을 꼽자면 저는 25년 살면서 정말로 별 목적 없이 인생을 살아왔구나 라는 것이 제일 큽니다. 물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부디 지금 저를 지켜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저 개인을 무서워하고, 또한 제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하고 국가관을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여기고 있는지, 아니면 서점에서도 파는 베스트셀러를 압수해가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영장에 “김정일이 총보다 더 위력이 강하다고 말했던 새로운 혁명도구” 로 둔갑시키는 기관들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하고 국가관을 혼란스럽게 여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과연 대남적화혁명노선을 가르쳐왔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냐는 것에는 제가 한 적도 본 적도 없어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구속되자 포털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에 나오고 옥중에 있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보낸 서신들을 생각해보면 저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적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정말 그랬다면 서신한 통 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경찰조사 마지막에 그간 해왔던 표현들을 다시 또 할 것이냐는 조사관의 물음에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석방된 뒤 문제가 되는 트위터 계정은 차단시켜놓았고 저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자의건 타의건 전보다 훨씬 많아졌기에 이전과 같은 표현들을 다시 할 계획은 더는 없습니다. 조금 더 표현에 있어서 신중하고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할 의무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판을 받고 있는 몸이고 저 하나 간수하기도 벅찬 몸인 건 알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런 재판이 또 일어나지 않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부디 이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합니다. 분명 이런 일이 위법이 되고 법정에 서야 하는 일인지 정말로 모르는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북한보다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이 되어있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문명국가라면. 그런 이들은 보호까진 아니더라도 그냥 놔둬도 될 정도로 대한민국의 자유는 강하고 또 넓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경솔하고 저속하거나 위험한 표현들을 했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유가 마땅치 않은 권위의식이라는 말은 똑바로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한 모든 표현들이 옳은 표현들이라고 주장하진 않겠습니다. 바보 같다는 비아냥거림은 충분히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보같이 여겨지는 표현들을 철창에 가둔다고 없던 권위가 생기거나 있던 권위가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북한에 대한 자료나 글들을 올리기도 올렸지만 북한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글들도 올렸다는 사실은 이미 변호인단이 제출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굳이 이 자리에서 다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글들을 들고 제가 북한에 간다고 해서 환영을 받을 수 있는 몸인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진보인사들에게 많은 이들이 하는 말들이 “그렇게 북이 좋으면 북으로 가라” 라는 말이라고들 하는데 저는 북에 가도 좋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고 남한에서도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보장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제 고작 4반세기를 살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이 시대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면도 있습니다만 그 전에 솔직히 좀 가혹하고 슬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활동가이기 전에 그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진관을 하고 있고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음반을 만들고 공연을 기획하고 영화를 좋아해 영화관도 시간이 날 때마다 들리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음악과 음반에 대한 고민, 사진에 대한 고민이 멈춘 요즘이 솔직히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고백하고 싶습니다. 부디 제가 국가관에 대한 혼란을 느끼는 것이 아닌 원래 해왔던 고민들을 하게 내버려두는 국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차라리 많은 이들이 바보취급을 하더라도 이런 혼란보다는 덜 외롭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이런 저 같은 사람이라도 사람 취급을 해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변론 끝까지 들어주신 재판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변론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